노블레스닷컴

FEATURE

2020-08-04

임슬옹의 우주

소속사를 옮기고 3년 만에 음원을 발표한 임슬옹.

옷을 낙낙하게 입는다고 정체가 숨겨질까? 때로는 헐렁한 옷이 몸의 선 그리고 태를 또렷하게 드러낸다. 임슬옹과 화보를 찍기로 했을 때, 패션에 무지한 피처 에디터는 스타일리스트에게 “평소 스타일보다 루스한 오버핏을 시도해보고 싶다”고 감히 주문했다. 옷과 살갗의 간격을 벌려, 그가 옷 안에서 놀 수 있으면 어떨까 상상을 해보았다. 화보 촬영장에 일찌감치 도착한 그는 전보다 부쩍 슬림해진 모습이었다. 몸의 중심을 앞으로 싣고 보폭을 크게 벌려 성큼성큼 걷는 모습이 자코메티 작품의 실루엣처럼 가늘고 단단했다. 총 다섯 착장의 옷을 입었고, 에디터는 헐렁한 옷 안에서 유영하는 한 남자의 몸짓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카메라 앞에 선 피사체는 어색한 것을 어색하지 않다고 애써 덧대어 말하지 않았고, 불편한 기색이 느껴지면 그것을 거짓 웃음으로 포장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진실되게 느껴졌다. 언젠가 그는 인터뷰에서 과장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과장된 수사가 근본적으로 어설픈 필력을 포장하지 못하는 것처럼, 임슬옹은 본질에 앞선 허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소설보다 수학, 과학, 철학 서적을 읽으며 진리를 탐구한다. 생각의 바닷속으로 침잠해 사유하지만 한 번도 바다를 마주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그의 생각을 전할 수 있도록 쉬운 언어로 치환한다. 그가 쓴 가사 대부분이 사랑 노래인 데다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따라 부를 수 있는 언어가 그 결과의 산물일 것이다. “입어봐야 아는 거잖아요.” 패션을, 옷을 좋아하는 셀레브러티는 차고 넘친다. 오히려 패션에 관심 없는 사람을 찾는 편이 빠를 것이다. 그러나 옷을 단지 아름다운 대상으로 취하는 것과, 그것을 입어봐야 안다고 말하는 것은 다르다. 그에게 화보 촬영이란 동시대 패션이라는 새로운 우주를 파악할 기회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몸에 두르고,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가지각색으로 변하는 옷의 아이덴티티를 탐구하는 과정이 그에게는 시대를 이해하는 성실한 연습이다.

‘바나나킥’ 과자를 좋아한다고 해서 준비했는데, 손도 안 댔다. (웃음) 먹고 싶다. 근데 몸 관리를 하느라 조절하고 있다. 평소 워낙 많이 먹는 편이라.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 꾸준히 곡 만들고 음반 녹음하고, 드라마 대본을 보며 새로운 작품을 찾고 있다. 지난주엔 예능 프로그램인 jtbc<아는 형님>에 출연했다.

올 2월에 소속사를 젤리피쉬로 옮겼다. 계기가 있는지? 음악과 연기를 병행할 수 있는 곳을 찾고 싶었다. (에디터의 눈치를 살피며) 너무 비즈니스적인가?

(웃음) 솔직해서 좋다. 젤리피쉬는 그 전 회사보다 뮤지션이 주축인 회사인데, 앞으로 음악 활동에 좀 더 몰두하고 싶다는 포부로 봐도 될까? 그건 아니다. 연기와 음악 둘 다 열심히 할 생각이다. 음악이야 워낙 오래 해온 거니까 하던 대로 열심히 하면서 연기도 잘하고 싶다.

(인터뷰한 날 기준) 곧 음원 발표를 앞두고 있다. 오랜만의 음악 활동인데, 어떤 음악인지 궁금하다. 3년 만에 내는 음원이다. 6월 16일 발표할 예정이고, 러블리즈 멤버인 케이와 함께 작업했다. 제목은 ‘여자사람 친구’. 직접 작사・작곡에 참여했고, 여자와 남자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범국민적 숙제를 주제로 가사를 썼다. 굉장히 재미있게 나온 것 같다.

가사 쓰면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좀 찾았나? 남녀도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더라. 원래 사랑과 우정을 분리하는 편이다.

워낙 많은 여자 뮤지션과 협업했다. 이번에는 또 새로운 뮤지션 케이와 작업했는데, 어땠나? 노래도 잘하고 재능이 많은 친구라 즐거웠다. 나는 곡을 해석할 때 함께 작업하는 아티스트와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이다. 가사는 대본처럼, 같이 참여하는 가수는 배역처럼 생각하고 이 친구는 어떤 사람인지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에 맞춰 내가 쓴 가사를 설명하고 함께 작업을 해나간다.

인터뷰하듯이. 그렇지. 이 곡은 이렇게 썼고, 이 가사는 왜 이렇게 썼는지 설명해준다.

뮤지션이라기보다는 음악감독 같다. 정확한 합리성과 정당성이 뒷받침되어야 감정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사, 파트, 타임라인에 담은 감정을 설명한 뒤 “너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 같아?”라고 묻는다. 그리고 친구가 해석한 생각을 이야기해주면 서로 이해시키고 조율하는 시간을 갖는다. 내가 만든 곡이지만 함께 부르는 상대를 곡 안에 적극 끌어들이는 편이다.

그런 과정이 어떻게 다른 결과를 가져오나? 좀 더 진실한 것이 나오는 것 같다. 아무래도 겉핥기식의 느낌은 아니니까.

언제부터 취한 방식인가? 20대 후반부터 점차 시도하다 지금은 이 방식이 주가 되었다. 곡마다 각각의 세계를 구축해 그 안에서 아티스트가 자연스럽게 뛰어놀 수 있는 판을 만들어주는 것이 내 역할 같다.

거기엔 연기를 병행하게 된 영향도 있을까? 그렇다. 그리고 기쁘거나 지칠 때 항상 책을 읽는데, 요즘은 철학이나 인문학에 관심이 많다. 원래부터 좋아한 수학, 과학 등 전문 서적도 작업하는 데 많은 동기와 에너지를 부여한다. 가사 쓰는 사람들이 시나 소설을 많이 읽는다던데, 나는 소설책을 잘 안 읽는다.

철학이나 과학 서적을 읽으면서 가사에 접목하는 부분도 있나?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가령 사랑 노래라면 이별을 다른 공간에 놓인 두 생명체의 존재로 접근한다. 둘이 있는 위치가 다르면 존재를 둘러싼 공기와 하늘, 하물며 보이는 별자리도 다를 거고,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를 떠올려 감정으로 표현하는 거다. 내가 생각해도 특이한 방식인 것 같다.

직관적으로 적용하기에는 시나 소설이 쉬울 수도 있다. 한데 소설을 잘 안 읽는 이유는 뭘까? 대단히 시적인 구절을 쓰기보다는 내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내는 것이 매력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술을 좋아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최근 명상 주제의 전시를 보고 SNS에 “온전히 나를 바라보는 일이 가능할까?”라고 적은 게 인상적이었다. 3~4년 전쯤부터 명상에 관심이 많다.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에 시작했는데, 호흡을 하면서 내 안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노래할 때의 숨과 명상에서의 호흡은 엄연히 다른데, 호흡에 집중하면서 결과적으로 노래에도 도움이 됐다.

온전히 자신을 바라보는 일에 가까워졌을까? 스스로에 대해서는 얼마나 안다고 생각하나? 글쎄, 잘 모르겠다. (감히 알 수 없는 것이라는 듯 단호히 고개를 젓는다)

스스로 생각하는 임슬옹은 어떤 사람인가? 감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

그 ‘감’이란 건 대중 아티스트로서 감인가? 그렇다. 어쨌거나 멈추거나 도태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감을 잃지 않으려 어떤 노력을 하나? 전시를 자주 보러 다니고, 새로운 사람도 많이 만나려고 노력한다. 항상 보던 사람, 편한 사람들만 보면 갇혀버릴 수 있으니까. 음악도, 쇼핑도 그렇다. 돈을 들여 옷을 사는 것도, 매거진 화보 촬영하는 것도 그렇다. 옷을 직접 걸쳐봐야 태를 낼 줄도 아니까. 항상 입던 옷이 익숙하더라도 트렌디하고 앞선 옷을 입어보면서 자연스럽게 표현하려고 연습한다(화보 촬영 후, 오랫동안 임슬옹의 스타일링을 맡아온 정겨운 스타일리스트가 한마디 했다. “옷에 관심이 많은데도 무조건 고집을 주장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한번은 임슬옹이 마음에 들지 않는 옷을 스타일리스트가 고집해 입혔는데도 주변의 좋은 피드백을 귀담아듣고 와서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어필해달라”며 임슬옹이 자신을 독려한 일화를 들려주었다. 여느 셀레브러티에게는 흔치 않은 태도라는 말과 함께).

언젠가 인터뷰에서 ‘착한 또라이’를 좋아한다고 했다. 어떤 맥락에서인가? 다크하고 부정적인 아티스트보다는 착하고 맑고 서정적인 친구들을 좋아한다. 나도 좀 그런 편이고.

직접 운영하는 이태원의 바 이름도 너드, 오드다. ‘또라이’와 어느 정도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하는데. 맞다. 착한 또라이란 게 기본적으로 너드 같은 ‘덕후’ 성향이 있어서 좋아한다. 나 스스로도 하나를 좋아하면 계속 파고들고, 모으고 서치하는 걸 즐긴다.

남과 다르게 특별히 파고드는 분야가 있다면? 뮤지션 중 수학이나 과학에 관심을 갖고 파고드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숫자로 딱 떨어지는 건 딱딱하고 창의적이지 않은 거라 생각했는데 요즘은 수학, 공학, 과학만큼 크리에이티브한 게 없는 것 같다. 동시대 예술 분야에도 공학가, 수학가가 다수 참여하지 않았나. 고등학교 때 친구 중 공부 잘한 애들이 많아 “이 앨범에 이런 마인드 맵을 만들고 싶은데, 우주의 중력과 상대성이론이 여기서 맞는 거니?” 이런 엉뚱한 자문을 구하기도 한다.(웃음)

그러고 보니 SNS에 “최악의 과학자는 예술가가 아닌 과학자이며 최악의 예술가는 과학자가 아닌 예술가다”라는 글귀를 발췌해 올린 적이 있다. 그 말이 당신의 마음에 훅 다가온 이유가 뭘까? 너무 맞는 말이라 설명을 못하겠다. 너무 완벽한 말이라서.

문득 영국의 전설적 수학자가 “수학은 이성의 음악, 음악은 감성의 수학”이라고 한 말이 생각난다. 과학은 정답이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고, 예술은 정답이 없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기도 하다. 서로 완전히 다른 분야처럼 보이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결국 맞닿아 있는 느낌이랄까.

젊은 예술가들과 가까이 지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친척 중 예술가가 많고, 아버지는 설계 도면을 그리고 어머니는 헤어・메이크업 일을 하셨다. 늘 예술가와 교류하며 살았다. 요즘은 이광호 작가의 작품을 좋아해 가까워졌는데, 감사하게도 이번 뮤직비디오 촬영 때 작품을 7개나 빌려주었다. 앞으로도 프로젝트에 아티스트와 지속적으로 협업하고 싶다.

소속사를 옮긴 뒤 활동에 박차를 가할 계획일 텐데, 생각지 못한 코로나19 사태를 길게 겪고 있다. 혼자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겠다. 아무래도 그렇다. 그런데 혼자만의 시간이 길어지고 생각이 많아지면 지나치게 진지해져 경계하는 편이다. 계속 상상하고 창작한다고 좋은 것만은 아닌 듯하고. 생각하는 시간과 아무 생각도 안 하는 시간을 적절히 나누려 한다.

다른 아티스트에 비해 감정 기복이 적게 느껴지는 이유일까? 기복이 있어도 티가 잘 안 나는 성격이다. 이젠 어린 나이도 아니고 많은 일을 겪다 보니 어지간한 일에는 ‘그럴 수 있지’ 담담하게 응수하려 한다.

거창한 삶의 목표 같은 건 안 세울 것 같다.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니, 현재에 충실한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목표란 게 도달을 못할 수도 있고, 현실이 항상 거기에 따라줄 만큼 녹록지 않으니까. 이루어진 순간에는 행복하지만 거기에 도달하기까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힘들 땐 어떻게 푸나? 운동! 몸을 많이 움직이는 게 최고다.

연기도 자기표현이란 맥락에서 음악과 같아서 매력을 느꼈다고 했다. 음악, 연기를 하면서 임슬옹이란 사람이 좀 달라졌을까? 엄청난 변화는 아니지만 내 안의 감정의 파편을 추적하는 기회가 된다. 그런 표현의 과정이 삶에 도움이 된다. 음악이든 연기든, 감정과 자아를 찾아가는 부분이 내겐 즐거운 숙제처럼 느껴진다.

에디터 전희란 (ran@noblesse.com)
사진 김참
헤어 민경(요닝)
스타일링 정윤기, 정겨운(Intrend)
어시스턴트 최고은, 한승희(Intrend)
디자인 부성수

Tag

Latest News

임슬옹의 우주

SEARCH